나 혼자 쓰는 AI vs. 우리 팀이 함께 쓰는 AI

나 혼자 쓰는 AI vs. 우리 팀이 함께 쓰는 AI [AI, 너 내 동료가 돼라 ③]
HR 업무는 양팔저울을 놓고 아슬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구성원의 몰입과 성장을 따뜻하게 독려하면서도 냉정할만큼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유연한 근태 환경을 장려하면서도 도덕적 해이의 여지가 없도록 확고한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뚫는 창을 동시에 충족하면서 최대다수의 구성원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HR의 오랜 벗은 다름 아닌 '엑셀'이었다.
플렉스는 이 '균형점 찾기'를 데이터 기반으로 돕는 올인원 HR 플랫폼을 만들어 왔다. 고객사마다 천차만별인 HR 정책과 예외적 케이스를 수용해 모든 조직이 자신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이 '플랫폼'의 핵심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담는다는 도전 하에 우리는 플랫폼을 거대하고도 정교하게 다듬었다. 하지만 이토록 강력한 플랫폼에서도 각 조직의 HR 담당자들은 마지막 '한 끗'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때때로 다시금 해 묵은 엑셀을 열기도 한다.
"SaaS는 죽었다(SaaS is Dead)."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가 던진 이 도발적인 한마디는 AI가 모 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불을 지피며 SaaS 업계를 달구었다.하지만 발언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SaaS의 종말이 아니라 AI와 결합한 SaaS의 '진화'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역설의 메시지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나 바이브코딩으로 앱 하나쯤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AI 시대를 마주한 지금, SaaS는 무엇이 달라야만 하고, 우리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이 거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고목과도 같이 거대한 인물과 마주 앉았다. 플렉스팀 초기에 합류, PE(Product Engineer) 및 PM(Product Manager)으로서 서비스를 만들고, 팀과 함께 AI SaaS로의 진화 설계도를 주도적으로 그려오신 분이다.

PM 분을 고목에 비유한 이유는 오랫동안 서비스의 기둥 역할을 해오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태관리' 하나만 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에 대응해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와 '우리 팀이 함께'의 결정적 차이
그는 먼저 개인이 쓰는 소프트웨어와 조직 구성원이 다 함께 쓰는 B2B SaaS는 근본부터 다른 점을 설명했다. 혼자 쓸 용도의 시간 관리나 목표 관리 툴, 가계부 등을 만들 때와 전 구성원의 채용, 근태, 목표, 평가, 급여 등을 다루는 플랫폼의 복잡성은 비교할 수 없다.
"B2B 소프트웨어는 '멀티플레이어' 환경입니다. 정보의 열람이나 데이터의 수정 권한 등 다양한 정책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하죠. 이걸 '권한 제어 및 정책 관리'라고 합니다. 또 누가 언제 무엇을 바꿨는지 모든 기록이 남아야 문제가 생겼을 때 추적할 수 있죠. 이걸 '감사'라고 하고요. 이런 통제 장치들이 바로 B2B SaaS의 핵심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AI에게 "우리 회사 HR 프로그램을 만들어줘"라고 주문은 할 수 있겠지만, "사무직 조직은 9시 정각에서 늦은 만큼 연차를 차감하고, 현장직 조직은 늦은 만큼 더 일하면 근무를 인정하는 정책을 동시에 지원해줘", "2차 이상 조직장은 소속 구성원의 평가를 모두 열람할 수 있지만 동료 평가의 평가자는 블라인드 처리하고, 1차 조직장에게는 평가 수정 권한을 부여하며, 조직장이 아닌 경우 자신의 결과만 열람할 수 있게 해줘", "개정된 세법에 맞춰 모든 구성원의 연말정산을 한 치 오류 없이 업데이트하고 개인별로 누락된 추가 제출서류를 점검해 알림을 보내줘" 같은 복잡다단하고 민감한 요구를 범용 AI가 완벽하게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권한 없는 동료에게 연봉이 공개되는 사고 발생의 후폭풍은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AI, B2B SaaS의 '한 끗'을 해결하는 세 가지 열쇠
이토록 복잡한 B2B SaaS가 AI로 어떻게 진화한다는 말일까. PM분은 플렉스가 AI SaaS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목한 세 가지 결정적 열쇠를 제시했다.
첫째, AI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는 AI의 '비정형 데이터 해석' 능력이 거대한 기회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기존 SaaS에서는 복잡한 화면을 클릭해가며 원하는 데이터를 찾고 맥락을 해석해야 했지만, AI SaaS에서는 “상반기 A프로젝트의 공식 담당자는 아니지만, 동료 피드백과 회의록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는 누구이며,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알려줘.”가 가능해진 것이다.
둘째, AI는 개발의 허들을 낮춘다. 그는 바로 이 지점이 모든 B2B SaaS 기업이 진정한 '플랫폼'으로 거듭날 기회라 부연했다. 권한 제어, 감사, 데이터 보안처럼 어렵고 복잡한 기반은 플랫폼이 제공한다. 사용자는 그 든든한 기반 위에서 다시 엑셀을 여는 대신 플랫폼이 안전을 보증하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한 끗'만 채워넣으면 된다.
이를 '브라우저'와 '확장 프로그램'에 비유하기도 했다. 플렉스 같은 플랫폼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브라우저' 역할을 하고, 각 기업 구성원은 플랫폼 내 AI와 협력해 특정 템플릿 같은 '확장 프로그램'을 올려 쓰는 셈이다. 이는 곧 SaaS라는 플랫폼 위에 사용자가 참여하는 확장 생태계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셋째, AI는 자율적으로 일하는 '에이전트'가 된다. 단순 반복 업무를 처리하는 '자동화'를 넘어, AI는 목표를 이해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 파트너 역할을 한다. 사람이 무엇을(What) 어떻게(How)할지 일일이 설정값을 세팅하는 대신, 무엇을(What)만 제대로 알려주면 된다.즉, “신규 입사자의 입사일에 환영메일을 보내고, 회차별 온보딩 세션 담당자에게 미리 알람을 보내며, 연동된 캘린더에 세션 일정을 무슨 요일 몇 시에 고정적으로 잡아줘”를 넘어 “신규 입사자 온보딩을 사내 절차에 맞게 잘 진행해주고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내게 알려줘” 정도면 충분하다. 에이전트는 사내 온보딩 정책을 학습하고, 주어진 규칙을 넘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프로세스를 조율한다.
'에이전트의 해'가 아닌 '에이전트의 10년'
그는 이러한 변화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지는 않으리란 점도 덧붙였다. 오픈AI 창업 멤버이자 테슬라 AI 총괄이던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발언을 소개하면서다.카파시는 '거의 완성에 가까웠던 웨이모(Waymo)의 자율주행 택시도 상용화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하며 2025년을 '에이전트의 해'라 지칭하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에이전트의 10년(Decade of the Agent)'이 될 거라 내다봤다. PM분은 이 관점을 빌려 과도기 동안 AI와 신뢰할 수 있는 B2B SaaS가 시너지를 내며 단단하게 발전할 거라 확신했다.
그의 말대로 AI 시대의 B2B SaaS는 AI와 상호보완하며 공고해지리라 본다. AI라는 강력한 지능이 플랫폼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조직은 안심하고 AI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플렉스팀의 AI 동료, 브룩 포드 님을 떠올리면 더 명확해진다. 그가 고객사의 민감 정보를 묻는 내 질문에 결코 답하지 않는 것처럼, 안전한 플랫폼의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AI만이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런 동료가 있기에 HR은 비로소 '양팔저울'의 완벽한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잡한 데이터 관리와 그 맥락의 해석, 반복적인 운영은 AI 동료에게 맡기고, 사람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사람다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일터가 손에 잡힐 듯 하다. 이를테면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고, 고충을 헤아리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직을 더 단단하게 다지고, 우리 조직문화에 딱 맞는 인재를 모시는 일 말이다.
송지현 님은 가장 레거시한 조직인 국회에서 가장 테크 싸비(tech-savvy)한 조직인 AI HR SaaS 스타트업 플렉스(flex)로 자리를 옮겼다. 이질적인 두 직장에 뛰어든 이유는 다르지 않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고픈 의지 때문이다. 여전히 생경하지만 이미 삶 속에 깊이 들어온 AI와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일터를 그린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출처: 한경JOB&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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