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암환자인 저에게 다시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flex story
페이스북링크드인트위터

예고 없이 암환자가 됐다
일상을 지탱하는 선이
툭, 끊어졌다

“김용건 씨죠? 여기 검진 센터인데요. 흉부 엑스레이에서 폐결절이 계속 자라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어요? 큰일났네… 지금 당장 대학 병원으로 가보세요.”

전화를 끊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동산 광고 전화를 받은 것 같이 조용했고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2023년 6월 중순, 별거 아닌 것처럼 혼자 동네 병원에서 CT를 찍었고 3주만에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아내와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날 병원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별거 아닐거야, 요새 오진도 많다고 들었는데 해프닝에 불과하겠지. 가볍게 넘겼습니다.

“암이네, 선암이라고 암의 일종인데…중얼중얼”

잠깐만요. 방금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단칼에 암 선고를 내린다고요? 흉부외과 의사의 진료는 1분 컷으로 끝났습니다. 몸 속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됐을 수도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는 짤막한 처방을 끝으로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거짓말. 폐암이라고? 숨 쉬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데? 아픈데도 없고 멀쩡한데? 머리 속은 온통 거짓말이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밀 검사 결과는 제 바람과 무관하게 전이 판정이 나왔습니다. 초조한 손가락은 연신 ‘암 전이’, ‘완치’ 검색어를 두들기고 밤새 암환자 카페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어딜 가도 ‘완치는 어렵다’ 는 댓글과 ‘먼 길 소풍 떠나셨습니다’ 같은 작별 인사만 검색될 뿐, 아름다운 수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직 검사 받으러 갈 때만 해도 상상도 못한 암.

통증보다, 소중한 사람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다

몸 안에 암이 전이가 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건 제가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오빠, O기래! 조직 검사 결과지 의사 친구한테 봐달라고 했는데 O기래! 자, 잘 들어어. O기면 5년 생존율이 엄청 낮대! 그러니까아 응? 허어엉 오빠 그래서…” 어억어억, 아내는 눈물에 목이 잠겨 울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내심 안 좋은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 먹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우는 얼굴을 보는 순간 힘껏 아내를 껴안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습니다. 전이가 된 상황이 슬퍼서도, 하루 아침에 O기가 된 자신이 억울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왜 나 때문에 아내의 일상이 박살나야할까? 큰 욕심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싶은 소망도 사치였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미래로 뒤덮어져야 하나. 이 사람의 소중한 미래가 나로 인해 더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하고, 미안했습니다.

암 판정을 받고 직장을 휴직한 날부터 아내의 일상은 중단되었습니다. 꿈꿨던 해외 여행 예약 대신 명의가 있다는 병원 진료를 악착같이 예약하고, 여유로운 주말 나들이 대신 쉴 틈 없이 입원과 검사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미래를 상실한 아내의 얼굴이었습니다. 몇 년 후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내년에는 여기로 여행을 가자. 잠들기 전, 소소하게 나누던 희망 사항도 사치가 되었구나.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나 미래도 약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2023년 마지막 날에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사회 생활은 사치일까

병원에서 최종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면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 일상 생활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통증이나 다른 문제가 없다면 정말 예전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집안일을 하거나 산책을 나가는 것은 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언제 재발할 지 모르는 암환자를 받아줄 곳은 없을 테니까요.

2030 환우가 모인 단톡방에서도 그저 환자로서의 삶만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약을 먹고, 산책을 하고, 끼니 때 식사를 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하루. 일하는데 무리가 없는 몸 상태라도 다니던 회사에서 전부 퇴사 처리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쓸모없는 사람’이 내 얘기로 다가왔습니다.

암환자, 그것도 기수가 높은 환자를 우리 팀은 다시 받아줄까? 갈 길이 바쁜 스타트업에서 언제 전력에서 제외될지 모르는 사람을 배에 태우려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팀이 나 하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항암 치료가 끝나면 건강을 회복한다고 해도 반 년 씩이나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회 생활 불가’는 가족의 경제적 일상도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파트 대출 이자를 낼 돈이 없고, 집을 팔아 원하지 않는 곳에 몸을 뉘어야 하고, 저축은 치료비로 소진되며,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어 삶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고립. 오직 그 고립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선택지 밖에 없다는 것이 잔인했습니다.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봅시다.”

팀 리드인 해남님에게 암이 전이됐다는 검사 결과를 얘기했습니다. 다음 날, 해남님이 점심을 먹자고 부른 자리에서 바로 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용건님, 아무 걱정 말고 치료하는 것만 생각해요. 우리 팀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한치 앞을 모르는, 불확실한 환자에게 작별 인사가 아닌 미래를 약속하다니. 사람의 쓸모를 계산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말은 회사에서 사용되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퇴사 권고를 짐작하고 들어간 자리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건강만 회복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 일을 할 수 있다. 지금의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flex 휴가 승인 내역. 2023년 메모가 남아있다.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뵐게요.”

2023년, 7월 7일에 병가를 승인하면서 해남님이 남긴 메모입니다. 안 좋은 결과 따윈 1%도 없을 것 같은 약속을 읽고, 꼭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플렉스라는 회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관계가 아닌, 어려운 상황에 손을 잡아주고 등을 내어주는 팀. 비어있는 공백을 탓하지 않고 서로 채워주는 동료. 저에게 플렉스는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수술 후, 항암 치료 중에도 피플팀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휴직 기간을 배려 받았습니다. 또한, 수시로 회사 상황과 브랜딩&마케팅팀의 일정을 공유 받으면서 계속 같은 팀의 일원이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직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소외되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회복에 대한 안부를 묻고, 보고 싶다는 팀원들의 인사 하나 하나가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일 때, 팀에서 이 사진을 보자마자 반가워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 이유

항암 치료가 끝나가고 어느 정도 회복될 무렵,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사는 시한부 인생인데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데 회사로 돌아가는 게 내 삶이 맞을까? 남은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머리 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마침 SNS를 둘러보니 소위 ‘갓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행복을 찾으러 세계 일주를 시작한 사람, 일흔 살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작가, 무작정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로운 업을 만난 사람까지. 피드를 볼 때마다 그들이 “회사로 돌아가는 것은 너의 진정한 행복이 맞아?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을 찾아! 넌 누구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내 삶의 방향성을 찾는 여행 ‘셀프 디깅’>이라는 프로그램을 등록했습니다. ‘그래, 진짜 내가 찾는 행복이 뭔지 알아보자’는 야심찬 마음으로요.

프로그램 세션 도중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경험’을 묻는 시간이 등장했습니다. 참가한 분들은 각자 행복했던 순간을 들려줬습니다. “퇴사하고 프랑스 니스의 해변가에 누워 자유를 만끽할 때 행복했어요.”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떠난 시간을 잊지 못해요.” 나에게도 정말 멋진 행복의 순간이 있을텐데.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그런 특별한 순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행복한 경험은 그보다 훨씬 작고 소소했습니다. 회사에서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달성했을 때의 격려, 당신이 있었기에 잘 마칠 수 있었다는 칭찬 한 마디를 들으면 그날 하루는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회사였기에, 그 안에서의 시간이 제겐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정말 힘든 순간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회사였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도 앉아있던 책상에 남아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회사, 가장 자연스러운 내 모습.

‘회사에서만 시간을 보내서 그렇지, 회사 밖 더 넓은 곳으로 시야를 바꾸면 행복의 기준도 달라지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말 회사 밖에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나만의 행복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낀 행복의 사진첩은 동료와 함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잘난 모습, 못난 모습도 투명하게 찍혀있었습니다. 벽에 부딪친 스스로의 모습에 울기도 하고, 치열하게 발버둥 친 시간까지 미운 정 고운 정이 모두 ‘일하는 삶’에 배어 있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내일 또 다른 가능성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예측 가능한 행복일까요. 회사로 돌아가서 못 다한 일을 이어가는 것. 내일은 더 좋아질 수 있는 믿음으로 가능성의 터널을 조금씩 뚫어가는 것. 동료와 함께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씩 가능하게 바꾸는 것만큼 멋진 순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회사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기다리는 동료가 있는 곳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 년 동안 못 본 동료들의 얼굴을 본 첫 출근일이
암 치료를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복귀 소식을 기쁘게 맞아주는 동료들, 아쉽게도 포옹회는 없었다.

나에게 최고의 팀은
채워주는 동료

“그럼, 내일 봅시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다룬 윤태호 작가의 작품 ‘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요양 병원에서 미생을 보다 왜 이 대사를 좋아할까? 궁금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당장 모든 것이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지 않을까. 평범한 인사 같지만 내일도 당연히 당신을 만날 거라는 약속. 기약 없는 하루 하루지만 적어도 이 사람 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윤태호 작가 원작인 드라마 <미생> (출처: tVN)

스타트업이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복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 그럼 어떤 동료가 있어야 그 회사를 선택할까요. 물론 탁월한 역량을 지닌 동료도 조건에 포함되겠지요. 구글이나 애플같은 입이 떡 벌어지는 경력을 갖춘 동료, 논리와 전략이 출중한 동료, 궃은 일을 도맡아 하는 동료…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최고의 팀이자 동료는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기꺼이 채워주는 사람, 오랜 공백에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탁월한 개개인의 역량보다 채워주면서 함께 가는 사람. 우리 브랜딩&마케팅 팀과 플렉스팀 모두가 저의 부족한 자리에 망설임 없이 손 내밀어 주었습니다. 저를 기다리며 플렉스팀을 지켜주신 동료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회사 생활로 돌아온 지 벌써 5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언제 암환자였냐는 듯 빠르게 업무를 보고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과 다르게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채워주는 동료’가 되자는 목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비어있는 곳에 손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고의 역량을 지닌 동료는 아닐지라도, 함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팀원으로 먼 여정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나요?
공유하기
페이스북링크드인트위터
flex가 궁금하다면? 지금 무료로 체험해 보세요
flex가 궁금하다면? 지금 무료체험하기
  • 2024. 4. 4
    데스 밸리를 넘어가려는 당신, ‘HR 역량’은 챙기셨나요?

    초기 스타트업에게 꼭 필요한 HR 역량, 우리 회사는 준비 되었나요?

  • 2024. 4. 11
    2024 flex Team Tennis League가 시작됩니다.

    2024 flex team tennis league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