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사무실에 5조 원을 투자한 이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는 유례없는 ‘재택근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일하고 싶은 업무환경은 갈수록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세계 시가총액 1위, 공룡 IT기업인 애플은 새로운 사옥 애플파크 제작에 한화 5조 3,0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은 무엇을 위한 투자일까요?
“회사가 잡초처럼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2011년 쿠퍼티노 의회에서 애플파크의 비전을 발표하며 실제로 한 말입니다. 애플의 사세가 빠르게 확장함에 따라 애플 직원들은 무려 100채가 넘는 건물에 흩어져 일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것이 애플이 추구하는 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12,000명이 넘는 인원이 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단일 사옥을 꿈꿨습니다.
잡스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에게 애플파크의 작업을 의뢰할 때 제시했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구성원의 협업과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항상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애플파크가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단 1개입니다. 잡스는 구성원들이 식사 시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레스토랑이 되길 바랐고 4,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었습니다. 애플의 구성원들은 매일매일 식당에서 마주치고 얘기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부여받는 것이죠,
직원들의 협업과 의사소통을 극대화하려는 잡스의 의도는 애플파크의 핵심 구조인 Pod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집중해서 개인의 업무를 수행하다가도 빠르게 동료와 협업할 수 있게 설계된 Pod구조는 물리적인 파티션으로 팀 간 구조를 나누는 대신 업무를 위한 팟, 협업을 위한 팟, 쉼을 위한 팟 등 작은 모듈을 이어 붙인 것 같은 형태로 연결되어 구성원 간의 장벽을 제거했습니다. 이런 구조적 형태는 애플파크가 단순히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활용하여 어떤 가치를 극대화할지 규정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기분을 상상해 보셨나요?”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수장이 된 팀 쿡 CEO는 애플파크의 업무환경을 ‘국립공원’에 비유했습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밖으로 나가 리프레시 하고 싶었던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심 속 사무실은 어떤가요? 밖으로 나가더라도 매연과 소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애플파크에서라면 건물 안팎에서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파크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이 사무실과 자연의 경계를 느끼지 못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애플파크 주변에는 9,000그루에 달하는 나무가 심어졌고 원형 안쪽에는 인공 호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스케일로 만들어진 통유리 벽면은 이런 자연경관을 그대로 투과하고 반사시켜 사무실 내부가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죠. 또한 애플의 구성원들은 건물 안쪽 3km가 넘게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건물 내부의 원형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도 자연 속에서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전에 잡스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고민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런 업무환경을 애플파크에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잡스가 세부 사항을 요구할 때 종종 두려웠어요”
애플파크는 2014년에 착공해서 2016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1년이 넘게 지연되어 2017년 4월이 되어서야 완공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파크에 쓰일 목재를 고를 때 ‘떡갈나무가 좋아요’, ‘단풍나무가 좋아요’같은 수준이 아니라 4분 절삭된 목재, 겨울, 특히 수액과 당 함유량이 가장 적은 1월에 벌목된 목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정할 만큼 엄청난 디테일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완벽에 가까운 집착은 공사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죠,
언뜻 들었을 때 과해 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사실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온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법칙이었고 그런 정신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애플파크에 사용된 손잡이는 무려 15번이 넘는 회의를 통해 제작되었고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건물의 차양은 마치 자연풍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부 공기를 순환 시켜 1년 중 9개월은 인공적인 냉난방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 전체를 덮고 있는 태양집열판은 건물에 필요한 전력을 100%에 가깝게 생산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단순히 건물을 설명하는 요소가 아니라 ‘애플’의 방향성 그 자체입니다. 구성원들은 매일 출근하고 일하는 곳에서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가고 있는지 체화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곳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가 일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애플파크에 대해 마냥 찬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애플파크의 독특한 외관과 그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영혼의 파트너이자 그의 사망 후 애플파크를 책임지고 완공한 조너선 아이브는 이런 비판에 대해 확실한 의견을 표명합니다. 애플파크는 누군가가 구경하거나 칭찬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라 애플의 구성원들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요,
애플이 사무실에 투자한 5조 원은 표면적으로 거대한 통유리, 넓은 산책로에 투자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애플파크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구성원들의 더 나은 업무경험이었습니다. 모든 기업이 애플처럼 큰돈을 사무실에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훨씬 더 합리적인 금액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개선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조금 더 편한 의자, 기념일에 작은 이벤트, flex 도입 등 구성원들의 더 나은 업무 경험을 위해 작은 것부터 투자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